Winter bud, Gongjaksaebang, 2025. 4. 10 - 2025. 5. 3 curated by Eun Chun, Yuja Kim, Gongjaksaebang photo Junyong Cho


 

송연승


시를 읽는 일은 할 말이 많은, 서술과 주장이 넘치는 글을 대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일이다. 쏟아지는 정보를 순차적으로 처리하면서 단서와 논리를 놓치지 않고 좇는 대신, 무게와 부피를 뭉텅 덜어낸 단어와 단어 사이, 행과 행 사이에서 우리는 숨을 돌리고 생각을 모으고 마음을 추스른다. 그리고 각자 또 다른 방식으로 빈 곳을 채워간다.

한정된 감각과 프레임의 제약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사진을 통해 포괄적인 공감각을 불러일으키면서 이미지와 그 틀 너머까지 상상의 폭을 확장시키는 작가들이 있다. 전명은과 김유자는 이미지 안에서 기억을 불러오고 심상을 그려내고 이야기를 꾸리는 일은 우리에게 맡긴 채 음성을 낮추고 한 발짝 물러섰다. 고요하게 비워낸 흑백 사진들에서 우리는 시를 읽는 경험을 할지 모르겠다.

전명은은 사진으로 인지체계를 재정비하고 감각의 범위를 확장하는 작업을 해왔다. 하나의 감각을 배제당했기에 다른 감각들을 더 예민하게 가다듬고 각별하게 의지하는 장애인들과 협업하며 상이한 감각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형성하고 공유할 수 있는지, 감각을 언어로 표현한 점자와 수어는 어떻게 결여된 영역들을 채워가는지 고심했다. 더불어 특정 사물을 매개로 삼아 어딘가를 지향하는 주체에 대해 정겨운 눈길로 질문하던 작가는 결국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살아 있음’이라는 데 다다랐다. 그 종류와 경로가 어떠하든 결국 하나의 주체가 느끼고 인지하고 꿈꾼다는 것은 생명력의 발로이므로. 이를 관철하기 위해 전명은은 자신만의 결정적인 순간을 실현시키려 한다. 그것은 수행할 과업에 막 진입하려는 체조선수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상태, 이전 단계에서 머뭇거리는 듯 보이지만 모든 상상과 감각은 이미 그다음 단계로 진입한 상태이다. 시간과 시간, 공간과 공간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순간을 그는 놓치지 않는다.

〈서간체〉 연작은 겨울의 정서를 혹한의 러시아라는 공간을 통해 환기한다. 뻣뻣하게 굳고 냉랭한 휴지(休止)의 시간은 전환의 에너지를 모으는 쉼의 기간이다. 얼어붙은 정경에는 이미 봄의 기원이 깃들었고 계절은 스며들듯 그침 없이 이행해갈 것이다. 오랜 시간 전명은이 마음을 쏟고 있는 ‘겨울’이라는 관념은 어둠에서 빛을 기다리듯, 동면과 침잠 속에서 녹아 흐를 단초를 소망하듯, 그렇게 잠잠히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작가는 인물을 다룰 때에도 혹은 무생물을 대할 때조차 자신의 중심이 매번 그러한 상황으로 귀결되더라고 고백한다. 아직 원하는 저편에 도달하지 못했을지라도 그날을 기다리고 꿈꾸는 상황 말이다. 그것은 계절의 진행일 수도 있고 욕망의 반영일 수도 있고 단계와 단계 사이의 숨죽임일 수도 있다.

피사체를 향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인물의 상반신을 담은 〈무제〉에서도 엿보인다. 작가는 그가 구태여 비장하거나 유난할 것도 없이, 그저 본인다움으로, 당연하다는 듯 카메라 앞에 섰다고 전한다. 그 담담하고 편안한 태도를 옮기고자 작가는 토르소에서 굴곡과 양감을 거두었다. 타인의 잣대에 좌우되지도, 자기 검열로 스스로를 소외시키지도 않을 때, 억지 치장으로 약점을 교활하게 숨기지 않을 때, 그렇게 기를 쓰고 애쓰지 않을 때 누구에게나 당당하고 어디서나 의젓할 수 있음을 우리는 이미 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아갈 용기를 낼 수만 있다면.

〈용의 깃발〉은 온몸으로 거대한 깃발을 휘두르는 전통 용기놀이 과정을 맨손으로 시연하는 용기대장 여현수를 담았다. 작가는 동작에서 동작으로 물처럼 이어지는 순간을, 그 미결의 틈새를 비집는다. 고된 무게와 거친 날씨에도 언제나 대장의 발걸음은 가뿐하고 몸짓은 정제되었으며 얼굴엔 웃음이 그득하다. 자신이 용기를 들고 나서는 그 길에 우리 삶의 애환과 희구가, 또 시대를 초월한 전통의 힘이 깊이 서려 있음을 잊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진중하면서도 자유롭게, 단정하면서도 눈부시게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담아내면서 작가는 그 묵직한 생에 경의를 표한다.


압축된 사진 이면이 유도하는 상상력에 주목하는 김유자는 존재했으나 어떤 것도 점유하지 못한 채 떠도는 사건과 경험, 기억과 감각들이 자리할 일종의 ‘장소’를 만들어주려 한다. 이를 위해 그는 시각장애 이모가 생전에 엄마와 오가던 길을 되밟으며 누락된 감각과 유실된 기억을 메우거나, 지도를 이탈한 걷기로 장소에 부여된 의미와 가치를 지우고 고착된 이미지와 언어의 긴밀한 관계를 흩뜨리기도 했다. 손상된 필름 속 우연히 증발해버린 고양이에서, 부풀다 꺼지고 눌리다 차오르는 내 살의 흔적에서 작가는 감지된 것과 기입된 것 사이의 균열을 들추고 채워진 것과 비어 있는 것 사이를 신중하게 오간다. 존재와 부재, 기억과 망각처럼 맞서거나 견주어져 서로를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영역들은 중첩되고 상쇄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구분선이 애초에 실재했을까 하는 의문에 이른다.

이를 전하는 작가의 방식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는, 표면에 살그머니 일어난 보풀처럼 미세한 움직임이다. 〈투명의 반복〉에서 한 마리 새처럼 앉은 인물은 시간의 경과도 잊은 듯 나무를 바라본다. 나무는 멈춰 있지만 사이사이 침투하는 빛은 무수히 명멸하고 분화한다. 수천 겹으로 변주되는 빛과 그림자는 뒤섞이며 가늘게 진동하고 어느새 명확하던 형태와 여백은 구별을 잃어간다. 그는 어쩌면 빛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처럼 누군가의 시선, 누군가의 두드림으로 견고해 보이는 세계가 조금씩 풀리는 순간, 분명하고 확고하던 구분 사이에 미묘한 흔들림이나 균열 같은 것이 감지되기 시작하는 순간에 이끌려, 이 작품을 서론과도 같은 전시 첫머리에 두었다. 사진은 정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움직임을 상상하게 해준다고 말하는 그는 공원 한구석 남겨진 텅 빈 벤치(〈점처럼 작아질 때까지〉)에서도 그 사이를 지나는 바람의 살랑임을, 찬찬하게 물드는 햇빛의 따스함을, 오가던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서로 나누며 다가올 만남을 기다리는 의자들의 꿈을 보고 듣는다.

〈되돌아오는 소리〉는 있었지만 이젠 없는 것, 보였지만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을 다시 인식하고 감각하려는 작가가 앞서 보낸 친구를 그 상상의 영토로 불러오는 소리이다. 분출되고 뻗어나가는 소리는 필연적으로 프레임에 갇히지 못한다. 막 불어넣는 호흡의 세기로, 밸브를 누르는 손가락의 압력으로, 차갑고 번뜩이는 금관의 질감으로 감지되는 굳센 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았던 상실의 세계를 용감하게 깨울 것이다. 소환의 작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다영과 영주〉는 떠난 친구와의 단절을 더는 애도하지 않는다. 우리들이 어떻게 전과 다름없이 앞으로도 함께할 수 있을까를, 어떻게 전에 없던 방식으로 조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나름의 레퀴엠이자 동시에 행진곡이기 때문이다. 다영이 좋아하던 안경다리의 단단한 구조적 형태, 씩씩하게 바깥을 응시하는 영주의 눈동자, 조심성 없이 멋대로 뻗쳐 오른 머리카락에서 작가는 여전히 든든하게 발휘되는 서로의 힘을 느낀다.

대상과 맺는 관계의 방식, 세계를 해석하는 소통의 방식에서 공통점을 발견한 전명은과 김유자는 《겨울눈 Winter Bud》에서 은근한 긴장감 속에 비중과 균형을 안배하는 대신 함께 녹아들길 바란다. 그리고 선후도 강약도 고저도 없는 또 다른 총체를 피워내길, 예상치 않은 방향의 물꼬가 트이길 기대한다. 털과 비늘로 겹겹이 매이고 싸인 겨울눈이 그 수많은 꽃들을, 잎들을, 열매들을 품고 새로운 계절의 이야기를 꿈꾸며 기다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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