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터 시티 : 지도의 바깥 Sister City : Off the Map (2022-)



내가 나고 자란 도시에는 라스베가스 공원이 있는데 어릴 적 학교에 가려면 이곳을 지나야 했다. 작고 평범한 공원이 화려한 이름을 지닌 까닭을 알지 못한 채 공원을 오갔고 중학교 졸업을 기점으로 동네를 떠났다. 몇 년 후 길을 걷다 우연히 공원에 도착했을 때, 공원 한편에 자리한 소박한 기념비를 보고 도시가 라스베가스시와의 자매결연을 기념하려 설립한 공원이라는 걸 알았다. 특정 장소와 긴밀히 연결된 공간인데도 장소를 특징지을 만한 상징성이 희미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작업의 배경인 대전과 가오슝은 자매 도시의 하위 개념인 우호 도시 관계에 있다. 우호 도시는 더 긴밀한 연결과 협력이 필요한 듯싶으면 자매 도시로 승격된다. 무엇이든 빠른 속도로 처리되고 가치 판단 역시 쉽게 이뤄지는 흐름 속에서 처리와 판단을 유보하는 자매·우호 도시의 개념은 내게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무언가가 되기 이전의 상태이기 때문에 특정 기호로 편입되지 않고, 여전히 우연을 기대할 가능성이 남아 있는 두 도시의 잠재력이 연대를 지속 가능하게 하리라 짐작했다.

비슷해 보이는 그러나 결코 같을 수 없는 모든 골목을 걷고 싶다는 마음으로 아직 가보지 않은 걸음이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으로 대전과 가오슝을 걸었다. 지도를 보지 않고 대전과 가오슝을 걸으면서 본 것과 보게 될 것, 기다리는 동작과 다가가는 마음을 생각했다. 모든 것은 지도의 안과 밖을 오가는 짧은 만남 속에서 얼마간 함께할 수 있을 것만 같고, 그 순간이 찾아와 주기를 내가 다가가 주기를 바라고 있다. 

시스터 시티 : 지도의 바깥 Sister City : Off the Map, Space Cadalogs, 2023. 8. 11 - 2023. 8. 31 curated by Yuja Kim


바깥의 사유, 비인칭의 시선 (임정연 / 문학평론가, 안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김유자의 작품 세계는 사진이라는 매체의 관성과 정향성을 벗어나 사진예술의 미학적•윤리적 전회를 가능하게 하는 자리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대전과 우호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대만의 가오슝을 여행하다 발견한 우연하고 우발적인 마주침의 순간들을 기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진들 중 어떤 것도 대전과 가오슝이라는 도시를 지시하는 고유한 기호로 기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이 환기하는 대상은 반드시 그 혹은 그녀가 아니어도 될 누군가와, 여기 혹은 거기가 아니어도 될 장소들이라 할 수 있다.


이곳과 그곳, 그때와 지금, 우리와 그들 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sister city’라는 명명이 함의하는 느슨한 연대일 뿐, 작가는 우리의 시선이 인덱스(index)를 좇아 고정된 이미지 안에 갇히거나 특정한 의미에 사로잡히는 것을 경계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사진의 독점적 권위와 창작자의 우위를 주장하는 일인칭의 시점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소유하지 않는 비인칭의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 김유자에게 사진은 사실을 현시하고 표현하는 도구라기보다 프레임에 포획되지 않은 ‘바깥’의 사유를 견인해 가는 매개인 셈이다. 김유자의 작품 속에서 이미지는 단일한 의미에 고착되지 않으며, 관계는 친밀하지도 영속적이지도 않다. 이들은 그저 우연히 작가와 마주쳐 시간과 공간의 한 좌표를 공분하며 무연한 관계로 맺어졌다 풀릴 뿐이다.


낯선 도시에서 ‘걷기’를 유인하는 가장 유용한 도구는 구글맵과 같은 지도이다. 그러나 지도 역시 세계 그 자체라기보다 세계를 보편적이고 단일한 방식으로 파악하기 위해 재현된 기호에 불과할 터. 해서 김유자는 지도 안에서 위치와 방향을 확인하기보다 경로를 이탈한 ‘걷기’를 통해 속도와 시간을 변주해 길을 만들어 가는 방식을 택했다. 작가는 지도에 기입되지 못한 채 버려지고 누락된 이름 모를 장소들을 제각각의 인상적인 이야기를 품은 화자의 자리에 재배치한다. 이 이야기들은 서로 조응하며 서사의 흐름을 이어 가다가도 어느새 독자적인 시퀀스를 형성하며 저마다의 사연을 풀어내기 시작한다.


카메라 앵글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은 채 불확실한 어딘가를 향하는 얼굴들, 꽉 움켜쥔 두 손 대신 헐겁게 맞닿아 있는 손깍지, 길모퉁이와 응달진 구석에 숨어든 햇살과 바람, 구겨지고 깨어지고 흩어져 제멋대로인 흔적과 그림자, 풀잎과 돌멩이가 남긴 여리고 미약한 움직임, 그리고, 그렇게 비워낸 여백마다 감지되는 소리와 촉감… 이들은 멈춰있는 듯하다 움직임으로 출렁대고, 다른 이미지에 스며들어 서로를 물들인다. 고요함과 소란스러움, 멈춤과 움직임, 스밈과 물듦 가운데 모든 경계가 희미해지는 바로 그 순간, 사진은 안이 품고 있던 바깥의 세계를 열어준다. 그 틈새로 우리는 타자의 초상에 낯익은 얼굴들이 포개지고 생소한 풍경 위로 익숙한 기억들이 덧입혀지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우리가 이때쯤이면, 어디론가 누군가에게 통하는 길이 결코 지도 안에 박제되어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김유자의 ‘바깥’은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비인칭의 시선과 느슨한 연대로 안을 확장하고 사유의 지평을 넓혀가는 공간이다. 거기에는 배제되고 은폐된 것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감지되지 않던 것들이 잔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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