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sp II (2021-2024)
Summerspace, Hall1, 2024. 4. 27 - 2024. 5. 11 curated by Seunga You
Summerspace 기획의 글 (유승아)
Summerspace는 ‘잠재성’이라는 개념어를 공간에 펼친다. 윤슬처럼 눈부시며 찰나에 아스러지는 순간. 무언가가 제 모양을 이루기 직전에 머무는 곳. 전시는 그 상황을 초여름의 계절감으로 상상한다. 어린 열매, 열도를 높여 가는 햇볕, 알록달록한 생기. 낭만적이고 야망에 찬 순간은 한편으로, 금세 지고 말 것이라는 우울과 불안이 깃들어 있다. 우리는 이 정서를 Summerspace라는 껍질에 담는다. 실상 그 계절에 대해서가 아니라, 한 시기를 지나는 행위와 감정을 채운다.
박보마는 여름의 심상을 검정 유리잔, 4시 놀이터, 녹음, 밤 산책, 젖은 속옷과 같은 단어들로 나열한 뒤, 음으로 골라 늘인다. 여름이라는 단어에서 촉발되는 무수한 이미지를 뒤집어쓴 채로 매혹, 소비되는 것들은 이 공간에서 비언어적이고 터무니없는 가치를 지닌 방식으로 놓인다. 금방 잃어버리고 말 것들을 반짝이게 장식하는 마음은 영원성과 순간성에 관한 은유로 읽힌다. 부서져 사라지고 말 것을 포용하는 태도, 공간에 반응해 즉흥적인 선택을 마다하지 않는 박보마의 임의로운 성향은 이나하의 화면 속, 물속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여자들의 모습과 연결된다.
이나하는 쉽게 통제할 수 없는 크기의 캔버스 천을 잡아 접고 문댄다. 물감을 바르고 밀고 문지른다. 무른 물질이 천과 부딪히고 반복적으로 포개어지며 한데 뭉쳐진다. 그 시간 속에서 안료는 뭉개지고 천에 안착한다. 반죽처럼 엉긴 천과 물감은 찰나의 결정들을 함축한다. 천에 달라붙은 액체적인 것들은 시간의 너비를 은유한다. 그 결과 화면 속에서 몸의 윤곽은 한 덩어리가 되어 물의 무게와 느슨하게 뒤섞인다.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은 형체는 김유자의 사진 작업 특유의 희고 보유스름한 이미지와 맞닿아 사위를 만든다.
김유자의 사진은 불명료하게 감지되는 순간을 아우르는 포용의 감각을 내재하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무수히 쪼개진 빛과 어둠으로 이루어진 명도의 세계와 만난다. 그 세계는 ‘마주하다’, ‘향하다’, ‘기울이다’와 같은 동사적 언어가 이미지로 치환될 때 형성되는 감각을 다룬다. 인물을 피사체로 삼아 로우-하이앵글로 카메라의 시점을 세밀히 조정한 방법론에의 변화도 그 감각에 일조한다. 김유자가 포착한 순간은 이미지로 고착되었지만, 감정의 차원에선 위태로움과 긴장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킨다.
김유자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진동과 떨림은 미지의 공간을 열어젖힌다는 점에서 이나하의 작업에 내재되어 있는 회화적 제스처, 움직임의 역동성과 닮았다. 또 스스로가 포착한 것을 반사시키며 단단하고 유약한 것을 각자의 매체로 다룬다는 점에서 박보마의 작업과 연결된다. 사건이 결정되지 않고, 의미가 도착하지 않은 상태를 만드는 박보마, 이나하 그리고 김유자의 작업은 고도를 달리해, 잃어버린 대상과 그 마음을 관찰하는 함혜경의 영상으로 이어진다.
영상의 주인공은 기대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예기치 않게 낙심한 순간을 회상한다. 의도는 일그러지고 마음은 빗나가고 기대했던 미래는 기어코 우리를 낙담하게 만든다. 그러나 상실을 기억하는 일은 나와 함께 했던 대상의 소중함을 인정하는 일이자 무언가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나를 무르고 취약하게 만드는 기억을 마주한다는 점에서 용기의 모양새를 닮았다. 잠시 머물다 사라진 대상의 텅 빈 자리를 기억하는 용기의 태도는 이 전시가 당신에게 건네고 싶은 것이다. 또 첫사랑의 기억처럼 끈질기게 남아 어느 미래에서 미지의 방식으로 불쑥, 떠오르는 잔상의 감각은 이 전시가 당신에게 기억되고 싶은 방식이다.
이렇게 Summerspace는 의도했음에도 어긋나는 것들과 뜻하지 않게 이룬 것들 사이에서, 잠재성을 내포한 순간들과 그 찰나의 정서를 마주한다. 겉으로 나타나지 않고 속에 숨어있는 성질을 꺼내어 공간으로 만든다. *미래는 공간으로 열린다.
*김리윤, 「얼마나 많은 아이가 먼지 속에서 비를 찾고 있는지」, 『투명도 혼합 공간』
Summerspace는 ‘잠재성’이라는 개념어를 공간에 펼친다. 윤슬처럼 눈부시며 찰나에 아스러지는 순간. 무언가가 제 모양을 이루기 직전에 머무는 곳. 전시는 그 상황을 초여름의 계절감으로 상상한다. 어린 열매, 열도를 높여 가는 햇볕, 알록달록한 생기. 낭만적이고 야망에 찬 순간은 한편으로, 금세 지고 말 것이라는 우울과 불안이 깃들어 있다. 우리는 이 정서를 Summerspace라는 껍질에 담는다. 실상 그 계절에 대해서가 아니라, 한 시기를 지나는 행위와 감정을 채운다.
박보마는 여름의 심상을 검정 유리잔, 4시 놀이터, 녹음, 밤 산책, 젖은 속옷과 같은 단어들로 나열한 뒤, 음으로 골라 늘인다. 여름이라는 단어에서 촉발되는 무수한 이미지를 뒤집어쓴 채로 매혹, 소비되는 것들은 이 공간에서 비언어적이고 터무니없는 가치를 지닌 방식으로 놓인다. 금방 잃어버리고 말 것들을 반짝이게 장식하는 마음은 영원성과 순간성에 관한 은유로 읽힌다. 부서져 사라지고 말 것을 포용하는 태도, 공간에 반응해 즉흥적인 선택을 마다하지 않는 박보마의 임의로운 성향은 이나하의 화면 속, 물속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여자들의 모습과 연결된다.
이나하는 쉽게 통제할 수 없는 크기의 캔버스 천을 잡아 접고 문댄다. 물감을 바르고 밀고 문지른다. 무른 물질이 천과 부딪히고 반복적으로 포개어지며 한데 뭉쳐진다. 그 시간 속에서 안료는 뭉개지고 천에 안착한다. 반죽처럼 엉긴 천과 물감은 찰나의 결정들을 함축한다. 천에 달라붙은 액체적인 것들은 시간의 너비를 은유한다. 그 결과 화면 속에서 몸의 윤곽은 한 덩어리가 되어 물의 무게와 느슨하게 뒤섞인다.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은 형체는 김유자의 사진 작업 특유의 희고 보유스름한 이미지와 맞닿아 사위를 만든다.
김유자의 사진은 불명료하게 감지되는 순간을 아우르는 포용의 감각을 내재하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무수히 쪼개진 빛과 어둠으로 이루어진 명도의 세계와 만난다. 그 세계는 ‘마주하다’, ‘향하다’, ‘기울이다’와 같은 동사적 언어가 이미지로 치환될 때 형성되는 감각을 다룬다. 인물을 피사체로 삼아 로우-하이앵글로 카메라의 시점을 세밀히 조정한 방법론에의 변화도 그 감각에 일조한다. 김유자가 포착한 순간은 이미지로 고착되었지만, 감정의 차원에선 위태로움과 긴장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킨다.
김유자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진동과 떨림은 미지의 공간을 열어젖힌다는 점에서 이나하의 작업에 내재되어 있는 회화적 제스처, 움직임의 역동성과 닮았다. 또 스스로가 포착한 것을 반사시키며 단단하고 유약한 것을 각자의 매체로 다룬다는 점에서 박보마의 작업과 연결된다. 사건이 결정되지 않고, 의미가 도착하지 않은 상태를 만드는 박보마, 이나하 그리고 김유자의 작업은 고도를 달리해, 잃어버린 대상과 그 마음을 관찰하는 함혜경의 영상으로 이어진다.
영상의 주인공은 기대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예기치 않게 낙심한 순간을 회상한다. 의도는 일그러지고 마음은 빗나가고 기대했던 미래는 기어코 우리를 낙담하게 만든다. 그러나 상실을 기억하는 일은 나와 함께 했던 대상의 소중함을 인정하는 일이자 무언가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나를 무르고 취약하게 만드는 기억을 마주한다는 점에서 용기의 모양새를 닮았다. 잠시 머물다 사라진 대상의 텅 빈 자리를 기억하는 용기의 태도는 이 전시가 당신에게 건네고 싶은 것이다. 또 첫사랑의 기억처럼 끈질기게 남아 어느 미래에서 미지의 방식으로 불쑥, 떠오르는 잔상의 감각은 이 전시가 당신에게 기억되고 싶은 방식이다.
이렇게 Summerspace는 의도했음에도 어긋나는 것들과 뜻하지 않게 이룬 것들 사이에서, 잠재성을 내포한 순간들과 그 찰나의 정서를 마주한다. 겉으로 나타나지 않고 속에 숨어있는 성질을 꺼내어 공간으로 만든다. *미래는 공간으로 열린다.
*김리윤, 「얼마나 많은 아이가 먼지 속에서 비를 찾고 있는지」, 『투명도 혼합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