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이쪽과 저쪽은 예기치 않게 서로 (박지수 / 보스토크 매거진 편집장)
한동안 피할 수 없었던 징크스. 운전 중 내비게이션의 길 안내를 세 번쯤 연달아 놓치면 예전에 네가 서 있던 장소에 이르렀다. 전혀 의도치 않게 네가 기억된 풍경에 마주했을 때, 처음에는 터져 나온 울음에 어쩔 줄 몰라 하며 황급히 차를 세워야만 했다. 차 안에서 저 밖을 바라보면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너의 모습이 보였다. 구부정한 허리와 피곤한 얼굴, 이 세상에서 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절감했다.
그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자, 어느 때부터는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 낯선 길을 거치면 아는 곳에 이를 것이다, 너를 바라볼 수 있을 테지, 그 이미지가 조금 더 오래 지속되기를···. 이런 상상을 하기도 했다. 이쪽에서는 네가 죽고 없지만, 저쪽에서는 네가 살았던 만큼, 내가 기억하는 만큼 이미지는 계속 쌓이고 재생되어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따로 존재하는 이쪽과 저쪽은 가끔씩 예기치 않게 서로 접속된다고.
죽은 이모가 생전에 엄마와 함께 걸었던 길을 다시 되밟아 가는 과정으로 이뤄진, 김유자의 사진 작업 <朝>는 이쪽과 저쪽 두 세계의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작가는 이모의 존재가 사라지고 숨겨졌던 이쪽 세계와 이모의 이미지가 여전히 남아있는 저쪽 세계를 오가며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모의 모습을 그려내고 또 기억해 낸다. 이를 위해 작가는 먼저 이모를 기억하는 네 사람(할머니, 두 삼촌, 엄마)에게 이모에 관해서 이야기를 듣는다. 그 과정을 통해 가족들은 처음으로 이모에 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동안 비밀처럼 묻어두어 가족 안에서 지워졌던 이모의 존재가 복원되기 시작했다.
이후 작업은 저시력 시각장애인 이모가 다녔던 서울맹학교와 집까지의 거리를 중심으로, 그 공간을 함께 걸었던 엄마의 기억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김유자는 신교동부터 용답동까지 먼 거리를 여러 날에 걸쳐 엄마와 함께, 또 홀로 걸으며 이모의 동행인이 되었다. 엄마가 지닌 기억의 호흡을 따라, 자신이 상상했던 이모의 보폭을 따라 함께 길을 걷는 산책은 눈에 맺히는 풍경을 발화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오래전에 언니에게 거리 풍경을 소곤소곤 중계했을 어린 엄마처럼 작가는 이모를 대신해 바라보고, 바라본 것을 입으로 옮길 것이기 때문이다.
저기 나뭇잎에 귀여운 구멍이 났어요. 벌레가 먹었나 봐요. 그 옆에는 이불을 깨끗하게 빨아서 널어놨어요. 날이 흐린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전에 걷어야 할 텐데···. 김유자는 이모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이모에게 건네는 이야기를 채우며 거리를 걸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오래된 교회에서 종이 울리면, 그 옛날 이모와 엄마도 들었을 종소리를 지금 여기에서 듣는다.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내심 반가워하고, 모두 함께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면서. 그렇게 어제와 오늘이 서로 겹쳐진 거리를 이모와 엄마와 함께 걸어간 기억은 이쪽과 저쪽의 차갑고 딱딱한 틈을 조금 부드럽고 따뜻하게 채워줄 것이다.
한동안 피할 수 없었던 징크스. 운전 중 내비게이션의 길 안내를 세 번쯤 연달아 놓치면 예전에 네가 서 있던 장소에 이르렀다. 전혀 의도치 않게 네가 기억된 풍경에 마주했을 때, 처음에는 터져 나온 울음에 어쩔 줄 몰라 하며 황급히 차를 세워야만 했다. 차 안에서 저 밖을 바라보면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너의 모습이 보였다. 구부정한 허리와 피곤한 얼굴, 이 세상에서 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절감했다.
그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자, 어느 때부터는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 낯선 길을 거치면 아는 곳에 이를 것이다, 너를 바라볼 수 있을 테지, 그 이미지가 조금 더 오래 지속되기를···. 이런 상상을 하기도 했다. 이쪽에서는 네가 죽고 없지만, 저쪽에서는 네가 살았던 만큼, 내가 기억하는 만큼 이미지는 계속 쌓이고 재생되어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따로 존재하는 이쪽과 저쪽은 가끔씩 예기치 않게 서로 접속된다고.
죽은 이모가 생전에 엄마와 함께 걸었던 길을 다시 되밟아 가는 과정으로 이뤄진, 김유자의 사진 작업 <朝>는 이쪽과 저쪽 두 세계의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작가는 이모의 존재가 사라지고 숨겨졌던 이쪽 세계와 이모의 이미지가 여전히 남아있는 저쪽 세계를 오가며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모의 모습을 그려내고 또 기억해 낸다. 이를 위해 작가는 먼저 이모를 기억하는 네 사람(할머니, 두 삼촌, 엄마)에게 이모에 관해서 이야기를 듣는다. 그 과정을 통해 가족들은 처음으로 이모에 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동안 비밀처럼 묻어두어 가족 안에서 지워졌던 이모의 존재가 복원되기 시작했다.
이후 작업은 저시력 시각장애인 이모가 다녔던 서울맹학교와 집까지의 거리를 중심으로, 그 공간을 함께 걸었던 엄마의 기억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김유자는 신교동부터 용답동까지 먼 거리를 여러 날에 걸쳐 엄마와 함께, 또 홀로 걸으며 이모의 동행인이 되었다. 엄마가 지닌 기억의 호흡을 따라, 자신이 상상했던 이모의 보폭을 따라 함께 길을 걷는 산책은 눈에 맺히는 풍경을 발화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오래전에 언니에게 거리 풍경을 소곤소곤 중계했을 어린 엄마처럼 작가는 이모를 대신해 바라보고, 바라본 것을 입으로 옮길 것이기 때문이다.
저기 나뭇잎에 귀여운 구멍이 났어요. 벌레가 먹었나 봐요. 그 옆에는 이불을 깨끗하게 빨아서 널어놨어요. 날이 흐린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전에 걷어야 할 텐데···. 김유자는 이모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이모에게 건네는 이야기를 채우며 거리를 걸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오래된 교회에서 종이 울리면, 그 옛날 이모와 엄마도 들었을 종소리를 지금 여기에서 듣는다.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내심 반가워하고, 모두 함께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면서. 그렇게 어제와 오늘이 서로 겹쳐진 거리를 이모와 엄마와 함께 걸어간 기억은 이쪽과 저쪽의 차갑고 딱딱한 틈을 조금 부드럽고 따뜻하게 채워줄 것이다.